모간스탠리 퀀트 개발자, 한국서 반도체 스타트업 창업..‘1㎲ 빠르게’

모간스탠리 뉴욕에서 퀀트개발자로 일했던 MIT 박사가 한국에 들어와 AI 반도체 스타트업을 차렸다. ‘빛의 속도도 너무 느리다’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에게 더욱 빠른 주문을 가능하게 해줄 전용 칩을 제작·판매하는 것이 우선 목표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이미 컴퓨터들끼리 치고받는 미국 주식시장에서” 조금이라도 먼저 주문을 넣으려는 시장조성자 등의 금융기관들이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부문은 하드웨어 뿐”이라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전용 데이터 라인이나 빠른 소프트웨어 등의 부문은 이미 한계까지 쥐어짠 상황”이라며 막대한 연산으로 시간을 잡아먹는 AI를 트레이딩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면 하드웨어를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MIT에서 갈고 닦은 칩 설계능력,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며 배운 시장 수요, 이미 메가 트렌드로 자리잡은 AI와 딥러닝, 반도체 강국인 한국의 이점 등을 모두 고려해 이 분야야 말로 “커리어를 걸고 승부해 볼만 하다”는 포부를 밝혔다.

작년 박 대표는 IBM TJ Watson 연구소에서 AI 반도체 수석 설계자를 맡은 오진욱 최고기술책임자(CTO) 및 의료 AI 스타트업 루닛에서 딥러닝 기술 개발을 담당했던 김효은 최고제품책임자(CPO)와 함께 리벨리온을 공동 창업했다.

리벨리온은 카카오벤처스 등으로 부터 55억원의 종자돈을 확보했고 올해 하반기에는 시제품 칩을 내놓을 계획이다. 시제품 출시를 계기로 투자를 더 받아 내년 상반기까지 실제 트레이딩에 활용할 수 있는 칩을 만들어 금융에서 글로벌 레퍼런스를 만들고, 이후 클라우드 서버와 자율주행 등의 분야로까지 범주를 넓혀가겠다는 청사진을 밝히면서 현재 “무한 채용 중”이라고 강조했다.

0.000001초의 세계

분당 정자동의 사무실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박 대표가 주로 언급한 시간 단위는 1000분의 1초인 밀리세컨드(㎳)와 100만분의 1초인 마이크로세컨드(㎲)였다.

그는 먼저 고빈도 거래(high frequency trade)에 대해 “모든 정보는 빛보다 느리게 전달되기 때문에” 생기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전국 각지에 거래소가 흩어져 있는 미국 시장의 특성상 뉴욕 시장에서의 가격변동에 시카고 거래소의 선물·옵션이 대응하려면 밀리세컨드 단위의 시간이 필요한데, 마이크로세컨드 단위로 주문이 나가는 현대 금융시장에서 그정도 시차는 고빈도 거래자에게 무위험 차익거래 기회를 넉넉히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거래 과정에서 포지션과 진입가격을 결정하기 위해 고빈도 거래자들은 전형적인 딥러닝 알고리듬을 활용하기도 하고, 또 딥러닝이 너무 느리기 때문이 일반적인 퀀트 알고리듬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박 대표가 설명했다.

기계가 사람보다 운전을 잘하고 자율주행이 일반화되는 것은 시기의 문제이지 가부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트레이딩 역시 AI가 더 잘하는 시점이 오고 있습니다.

그는 “고빈도 거래를 하려면 1초가 아닌 1밀리세컨드 뒤를 예상해야 한다”며 “시계를 짧게 잡을수록 AI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고 딥러닝의 강점이 부각된다”고 말했다. 대규모의 연산을 처리해야하는 딥러닝의 특성상, 이를 활용한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거래를 하면 방향성 예측에는 뛰어나지만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 느린 것을 마이크로세컨드 단위에서 조금 빠르게 해주겠다는 것이 사업목표”라고 박 대표가 말했다.

그는 ASIC(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 도입이 금융기관의 트레이딩 손익을 “상당 수준” 개선해줄 것으로 기대하며 “ETF의 경우에는 그 효과가 클 것이고 거래량이 적은 종목에 대해서는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FPGA와 ASIC

그는 자신이 만들고 있는 반도체를 ASIC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목적에 활용되는 CPU와 달리, ASIC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만 설계되고 그 해당 목적을 아주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중간단계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중간에 위치하는 FPGA(field programmable gate array)가 있는데, 현재 “앞서가는 금융기관들이 거래에 FPGA를 활용하고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Charles Shum에 따르면 GPU나 FPGA에 비해 ASIC는 단일 목적에 대한 분석 업무를 더욱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고 지난달 리서치 리포트에서 설명했다. 또 ASIC는 에너지 소비가 FPGA의 절반 수준이고, 생산가격은 3분의 1이라고 전했다.

박 대표는 “결국 대형 금융기관들이 ASIC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 강국, 무한 채용

그는 한국에서 창업을 한 이유에 대해 “반도체는 대한민국이 넘버원”이라며 미국 실리콘밸리 등보다 AI반도체 스타트업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칩을 잘 만들려면 결국 한국, 대만, 이스라엘 정도인데 이곳들 중 한국이 가장 편한 국가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에는 반도체 진짜 잘하는 인재가 풍부하다며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분들이 국내에 많이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업은 돈과 사람을 모으는 게임인데, 저금리 속에 자금은 풍부하니 사람만 모으면 된다”며 업계 최고의 대우와 무한 채용 계획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올해 25명, 내년 40명,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미국 오피스를 포함해 80명까지 회사 인재를 확대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단순하게 사람들 숫자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실있는 팀을 만들고 싶다”며 “좋은 인재가 있다면 당연히 더 큰 팀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1984년생인 박성현 대표는 카이스트를 거쳐 MIT에서 전기전자컴퓨터공학 박사과정을 밟은 뒤 인텔 랩과 미국 삼성모바일,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를 거쳤다. 2018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는 뉴욕 모간스탠리에서 퀀트 개발자(VP)로 일했다.

— 기사 작성: 최환웅기자 wchoi70@bloomberg.net, 김후연 기자 hkim592@bloomberg.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