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종전선언시 달러-원 급락?…섣부른 기대는 위험

(블룸버그) — 남한과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혹은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결국 종전을 선언한다면 달러-원 환율이 1000원 아래를 향해 본격적인 하락세의 포문을 열 수 있을까? 지난 2월 평창동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대북 위험이 갑작스레 낮아지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논의 될 때만 해도 원화의 급격한 강세를 예상했던 시장이었지만 오히려 현재는 잠잠한 모습이다.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종전선언 이상으로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는 기대에 조심스럽게 힘이 실리고 있지만 미래에셋대우, 우리은행을 비롯한 다수의 시장 전문가들은 달러-원 환율 급락에 베팅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2000년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달러-원 환율 움직임을 보면 추가하락보다는 오히려 상승반전했던 경험은 이같은 경고에 귀기울이게 하는 부분이다.

황색 원은 북한의 핵실험 실시 시기

 

남북 평화 모드 이미 선반영…연저점 경신도 힘들 듯

미래에셋대우 윤석범 PI팀 부장은 18일 전화 인터뷰에서 “종전선언 혹은 이를 뛰어넘는 평화협정 합의 도출 등의 결실이 확인된다면 이는 당연히 원화에는 강세재료가 되겠지만, 이미 관련 기대감이 시장에 어느 정도 반영이 되어있다”고 지적했다. 계절적으로도 수급여건이 “달러 수요 우위”인 상황인 만큼 남북 및 북미 회담 결과가 달러-원 환율을 크게 끌어내릴 것 같지는 않다고 진단했다. 특히 “남북 및 북미 회담 결과 자체만으로는 1054원 수준의 연저점을 낮추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며, 시장이 북한 관련 소식보다는 이제 한-미 통화정책 차별화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룸버그 집계 기준 달러-원 환율은 4월 3일 1054원까지 내려 2014년 10월이후 최저 수준을 경신했지만 달러-원 환율 1개월 옵션 내재변동성은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월 저점 수준보다 위에 머물고 있다. 달러-원 환율 1년물 변동성 또한 2월 초의 급등분을 모두 되돌리지 못한 상황이다.

시중은행 FX 옵션 딜러는 18일 전화 인터뷰에서 “대북 위험이 잦아들면서 원화 강세 기대감이 높지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옵션 시장, 특히 유동성이 많지 않은 1년물 거래의 경우 이미 변동성 매수 포지션으로 헷지하고 있는 시장 참여자들은 아직까지 이를 눈에 띄게 정리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1050원 붕괴시 당국 스무딩 경계 다시 살아날 듯

우리은행 민경원 연구원은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당초 남북회담의 시장 영향이 적을 것으로 봤지만, 트럼프 미 대통령이 남북의 종전선언을 적극 지지한다고 말한 점이 게임 체인저로 작용해 향후 달러-원 환율이 현수준 대비 15원 정도 하락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1050원이 하향 돌파된다면 당국이 지지선을 보수하는 차원에서 스무딩에 나설 수 있어 회담 직후 달러-원의 변동성이 일시적으로 확대되겠지만, 되돌림이 나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선물 전승지 연구원은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남북 및 북미 회담에서 비핵화와 종전선언 등 예상 밖의 대형 합의 도출 시 달러화 롱포지션 정리와 함께 일시적으로 달러-원 환율 하락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번 회담 이벤트로 달러-원 환율이 내려갈 수 있는 “하단의 마지노선은 1030원 수준”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국 증시 외국인의 차익실현 욕구가 강한데다, 이미 높은 한국 신용등급으로 인해 긍정적 회담 결과가 추가적으로 강한 원화채권 투자 수요를 자극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시장이 남북 및 북미 회담 결과를 한국의 신용 위험 해소 재료보다는 향후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따른 한국경제에 대한 실질적 영향을 가늠해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한국물 5년 CDS 프리미엄(뉴욕 CMA 집계기준)은 올초 40bp대 초반으로 내려 작년 한해 북한 위험으로 인해 급등했던 부분을 모두 되돌린 후, 40~60bp 박스권 안에 머물고 있다.

다만, 외환당국의 운신의 폭이 크지 않다는 점도 지적된다. 오안다의 APAC 트레이딩 책임자인 Stephen Innes는 19일 블룸버그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주요 수출국들은 자국 통화가 강세를 덜 보이는 것을 선호하지만, 현재 한국 외환당국은 환율조작이든 속도 조절을 위한 개입이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 재무부가 감시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원화가 1060원 수준을 시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북한보다 통화정책 차별화에 주목할때..글로벌달러 반등 경계

한편 시중 증권사 채권펀드 매니저는 19일 전화통화에서, 남한과 북한의 회담 결과야 당연히 중요하지만 현재 시장 참여자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것은 미달러가 언제까지 이렇게 약세 국면에 머물겠느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대북위험이 해소되는 쪽으로 시장이 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남북 및 북미 회담 결과에 따른 원화 강세에도 불구하고 대외 일드커브 플래트닝 움직임이 지속된다면 결국 시장은 “온건한 경기침체”를 가격에 반영하고 이에 미달러는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신한은행의 백석현 연구원도 오늘 이메일 인터뷰에서 남북정상 회담 자체는 달러-원 환율에 하락 요인이라고 보지만 대외 여건이 환율 하락에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장기 금리 상승이 주식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동안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변동성이 낮아지는 동안 달러 약세에 베팅한 투기 물량이 커진 점을 지적했다. “변동성이 증가하는 시점에는 달러에 대한 숏커버가 나타나 환율 역시 상승 쪽으로 방향을 틀 소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달러가 현시점에서 가장 적정수준에서 벗어나 있다”며 통화정책 차별화 등을 재료로 연내 미달러 강세 랠리를 보일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