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이 17일 외환시장에 대한 개입내역 공개를 최종 결정하면서 원화 국제화의 마지막 목적지인 역외에서의 원화 전면거래 허용으로 시장의 시선이 옮겨가고 있다. 다만,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도 OECD 회원국 중 가장 마지막이었고, 원화의 역외 거래가 당국이 강조한 환율주권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국의 외환시장 투명성 제고 조치에도 원화의 전면적인 역외 자본거래는 중장기적으로도 허용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역외 원화거래는 ‘전혀 다른문제’…당국 입장도 완강
한국은행이 지난 2016년 발간한 ‘한국의 외환제도와 외환시장’에 따르면 외환당국은 1997년 12월 달러-원 환율 일일 변동제한폭을 폐지하며 자유변동환율제로 이행했다. 그동안 국제통화기금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시장안정조치 내역 공개 등 외환정책의 투명성 제고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고, 한국은 결국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OECD 국가 중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시장안정조치 내역을 공개하고 있으며, G-20 국가도 인도네시아와 남아공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공개하고 있다고 기재부는 오늘 보도자료에서 설명했다.
이처럼 정보 공개에 폐쇄적이던 한국 외환당국이 사상 처음으로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에 나서며 원화 국제화는 이제 마지막 관문인 전면적인 역외 원화거래만을 남겨두고 있지만, 이 예민한 사안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부정적 입장이다.
실제 지난 2017년 한국을 방문한 헨리 페르난데즈 MSCI회장은 한국 증시의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위한 선결조건으로 ‘역외 원화거래’를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임종룡 당시 금융위원장은 소규모 개방경제며 수출입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 상 외환시장의 안전성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문제로 단기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결정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외환당국 관계자들 역시 이같은 점을 직간접적으로 강조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7일 외환시장 개입 공개 관련 어떤 결정이 이뤄져도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되며, 급변동시 안정조치에 나선다는 기본원칙은 향후 견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김 부총리가 지난 4월 직접적으로 환율주권을 분명히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점은 이와 밀접하게 연관된 원화 역외거래에 대한 당국의 입장이 여전히 변화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17일 블룸버그와의 통화에서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 문제는 시스템의 투명성 차원 문제지만, 원화의 역외 거래는 시스템 그 자체의 이슈”로 봐야 한다며 이에 대해 현 시점에서는 논의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원화 국제화 과정에서 원화가 통제권을 벗어나게 될 경우 한국 내 경제주체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당장 역외 원화거래 허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는 이르다고도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가능성 낮게 봐…‘당국만의 의지로 결정할 차원의 문제 아냐’
외환시장 참가자와 전문가들 역시 중장기적으로 원화의 역외 자본거래 허용 가능성을 상당히 낮게 보고 있다. 무엇보다 해당 사안은 환시 개입내역 공개와 달리 외환당국 혼자만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시중은행의 팀장급 FX 트레이더는 지난 4일 전화통화에서 원화의 역외 자본거래 허용은 외환당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인 경제주체의 문제이며, 특히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사안인 만큼 외환시장 개입 공개와는 완벽하게 다른 이슈라고 설명했다. 이 트레이더는 “당국이 아니라 정부 최상부에서 결정이 나와야할 것”이라고도 진단했다.
다만, 그는 “과거 글로벌 이벤트에 휩쓸릴 경우 달러-원 환율이 50원에서 100원 가량 변동폭을 보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20원 정도에서 충격이 흡수되는 수준”이라며 “이는 그만큼 외환시장을 이루는 각 주체들의 충격 흡수 능력이 더욱 강해졌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경제 규모와 펀더멘털 등이 더욱 확대되고 견조해져야 원화의 역외 거래가 허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은행의 민경원 이코노미스트 역시 지난 10일 이메일 인터뷰에서 역외 원화거래에 대해 “당장은 가능성이 낮다”며 개입내역 공개로 투명성이 충분히 개선됐고 NDF 시장에서 원화가 가장 많이 거래되는 만큼 최대한 역외 거래 허용은 미룰 것으로 분석했다. 원화의 역외 거래를 추진하더라도 무역거래 활성화에서 자본거래 허용으로의 점진적 확장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엄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