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英트러스의 도박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파운드를 사상 최약세로 무너뜨린 금융시장의 대혼란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라며 자신의 감세정책을 철회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부가 옳은 결정을 했다고 확신한다. 이는 옳은 계획”이라고 현지시간 목요일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의 발언 후 길트채 2년물 금리는 한때 27bp 가량 급등했고, 파운드는 최대 1.2% 밀린 뒤 저가매수세에 힘입어 재차 반등했다. 지난 금요일 트러스 정부가 경제 성장을 부추기기 위해 부자와 기업에 대한 세금을 낮추는 등 1972년래 최대 감세안을 발표했지만 재원 마련 우려가 불거지며 시작부터 시장 붕괴에 직면했다.
전일 영란은행(BOE)은 캐시콜(cash call)이 쏟아져 투자자들이 길트(국채) 투매에 몰리며 대붕괴가 촉발될 수 있다는 경고에 장기 채권의 무제한 매입을 약속하며 강력한 개입에 나서야 했다. 사실 트러스에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자신의 첫 경제정책을 포기할 경우 정권 초부터 신뢰를 잃어 정치적으로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심지어 국제통화기금이나 미국 행정부조차 금융시장 변동성과 글로벌 경제에 미칠 잠재적 파급효과를 우려해 감세안 철회를 압박하고 있어 자칫 이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줄 위험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정책 노선을 고수할 경우 투자자 신뢰를 잃어 이 또한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
독일 물가 쇼크
독일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비 10.9%(유로권 기준)로 시장 예상치 10.2%를 크게 뛰어 넘었다. 20여년전 유로존 출범 이래 처음으로 인플레이션이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여름에 한시적으로 적용했던 대중교통과 연료비 할인 제도가 종료되고 유럽내 에너지 위기가 악화되면서 물가가 더욱 가파르게 치솟은 모습이다. 독일 정부는 목요일 가계와 기업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존 팬데믹 지원 펀드와 추가 2000억 유로를 투입해 천연가스 가격상한제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독일의 인플레이션이 내년까지도 높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년 CPI 상승률을 7% 정도로 내다봤다.
금요일 발표될 유로존 CPI 역시 신기록 경신이 예상됨에 따라 유럽중앙은행(ECB)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유로존 경기기대지수는 기록적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부족 우려 속에 9월 93.7로 2020년래 최저 수준으로 후퇴했다. 필립 레인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0월 정책회의에서 2연속 75bp 인상이 필요하다는 일부 ECB 위원들의 주장에 대해 아직 한달이나 시간이 남았다며 아직 다음 인상폭을 결정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지적했다. 또한 통화정책 정상화를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금리를 올릴 생각이라고 전했다. Martins Kazaks와 Gediminas Simkus, Madis Muller 정책위원 등은 다음 회의에서 75bp 인상을 지지할 생각임을 시사했다.
연준 중단 없다
연준 인사들은 현지시간 목요일 높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계속 인상할 생각임을 재확인하고, 시장이 이제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총재는 “점도표를 보면 FOMC가 올해 상당한 추가 움직임을 예상하고 있다”며, “내 생각에 시장이 이를 소화하고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 듯 보인다”고 평가했다. 투자자들은 11월 75bp에 이어 12월 50bp 인상을 베팅하고 있다. 또한 영국발 혼란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도 미국 인플레이션이나 실제 성장 상황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고 있어 연준이 긴축을 중단할 이유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총재 역시 연준 위원들이 기준금리를 제약적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의지가 결연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아직 제약적 영역에 와 있지 않다”며, “실질 금리가 플러스 영역에 있어야 하고 한동안 거기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메스터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인플레이션이 보다 오래갈 수 있어 여러 연준 동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금리가 약간 더 올라가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밝혔다. 11월 인상폭에 대해선 경제 지표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달려 있다며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경기침체를 예상하진 않고 있다고 낙관했다.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총재는 물가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연준이 계속해서 금리를 올릴 방침이며 그 과정에서 심각한 경기 하강은 피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 위험, 2007년 8월 위기전과 같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글로벌 경제가 2007년 여름 위기 직전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블룸버그 TV 인터뷰에서 영국의 혼란 등 리스크가 높아졌다며, “2007년 8월 사람들이 염려하기 시작했던 것처럼 지금이 그럴 때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2007년 여름 미국 주택시장 붕괴 신호가 처음 나온 뒤 세계 경제는 대공황 이래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었다. 서머스는 영국 외에 아직 다른 시장에서 무질서가 보이진 않지만, 변동성이 극에 달했을 때 이같은 상황이 보다 쉽게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취약 요인으로는 높은 레버리지, 경제 정책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 높은 기저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안, 원자재 상품 변동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및 중국과 관련한 지정학적 긴장 등을 꼽았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일본의 딜레마라며, 한편으론 자국 통화 방어를 위해 지난주 엔화를 매입하며 시장에서 유동성을 거둬들이면서 다른 쪽에선 일본은행(BOJ)의 통화 완화를 통해 유동성을 계속 투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경우 “매우 복잡한 미지의 영역”이라며, 영란은행의 길트채 매입은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겠지만 10월 14일로 시한을 정한 개입이기 때문에 그 효과가 오래 가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시장이 영국의 거시경제 정책이 지속가능하다고 믿지 않는데 있다고 지적했다.
메타도 비용감축
기록적 인플레이션과 임금 상승에 기업 이익이 압박을 받으면서 비용 감축을 위한 인력 구조조정 소식이 연일 나오는 모습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소유한 메타 플랫폼스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설립 이래 처음으로 인력 감축을 예고했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과의 주간 질의응답 시간에 “지금쯤이면 경제가 훨씬 분명히 안정되었기를 희망했는데 현재 상황은 아직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따라서 우리는 다소 보수적으로 계획하길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채용을 동결하고 심지어 성장하는 부서를 포함해 대부분 팀의 예산을 줄이겠다고 했다. 소프트뱅크는 적자 상태인 비전펀드의 직원을 최소 30% 내보낼 방침이라고 소식통이 전했고, RBC Capital Markets는 미국 투자은행 팀 중 1%를 해고했다. 구글은 2019년 런치한 스타디아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를 실적 부진을 이유로 중단하기로 했다. 아마존닷컴은 미국내 콜센터를 한 곳만 남기고 모두 닫을 예정이며, 수백명의 직원을 재택근무로 전환해 사무실 비용을 절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