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렌트유, 7월래 첫 80달러 하회…금리 인하 베팅 지지
국제유가가 여러 수요 약화 지표 속에 하락세를 재개했다. 유가 약세 흐름이 지속될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이 둔화되며 시장의 금리 인하 베팅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 채권 시장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보여주는 미국 2년과 10년만기 BEI도 덩달아 하락했다. 9월말 배럴당 97달러 돌파를 시도했던 글로벌 벤치마크 브렌트유는 현지시간 수요일 한때 3% 가까이 밀려 7월래 처음으로 80달러를 하회했다. 미국 벤치마크 서부텍사스산(WTI) 원유 역시 전일 4.3% 급락에 이어 장중 3.2%나 하락했다.
최근 몇 주 사이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다소 후퇴함에 따라 트레이더들의 관심은 수요 둔화 신호로 쏠렸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에서 정제 마진이 줄어들고 석유 및 연료 재고가 급증하고 있는 반면 항공 여행은 아직 크게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국 당국의 부양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소비자들의 신뢰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Oanda의 수석 시장 애널리스트 Craig Erlam은 중국 경제지표가 “분위기를 더욱 악화시켜 어제 급락에 기여했다”며, “시장의 초점이 공급 부족에서 수요 부진으로 옮겨가고 있는데다 중앙은행들이 고금리 기조를 고수하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BOE·ECB, 시장의 조기 금리 인하 베팅에 반박
앤드류 베일리 영란은행(BOE) 총재는 당분간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장기간 제약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시장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를 꺾으려 했다. 그는 수요일 “금리 인하에 대해 말하기엔 너무 이르다”며, “시장은 물론 어떤 견해에 도달할 것이다. 시장이 금리의 미래 경로에 대해 견해를 가져야 한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매우 분명히 말하는데 우리는 이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베일리의 발언에도 시장 기대는 거의 그대로다. 전일 휴 필 BOE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에 대해 “완전히 불합리하진 않아 보인다”고 말하면서 트레이더들은 내년 BOE 금리 인하 베팅을 더욱 강화했다. 시장은 현재 내년 예상 인하폭을 75bp로 가격에 반영 중으로, 지난 달 30bp 베팅에서 두 배 이상 높였다.
한편 요하임 나겔 분데스방크 총재는 유럽중앙은행(ECB)이 언제 금리 인하를 시작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시기상 너무 빨라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그같은 논의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가브리엘 매크루프 ECB 정책위원 역시 ECB가 금리 인하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매파인 마틴스 카작스 ECB 정책위원은 아직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고, 필립 레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인플레이션의 최근 하락에 너무 안도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레인은 인플레이션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너무 높고 2025년이나 되어야 목표치로 되돌아갈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피에르 분쉬 ECB 정책위원은 에너지 가격 충격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ECB의 추가 인상 필요성이 줄어든 것으로 진단했다.
IMF 유럽 연착륙 전망
국제통화기금(IMF)은 1년 넘게 지속된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더라도 유럽 경제가 붕괴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IMF는 현지시간 수요일 보고서에서 “유럽은 인플레이션이 점진적으로 하락하는 연착륙이 예상된다”며, 유럽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1.3%, 내년 1.5%로 제시헀다. 다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급등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정상 수준으로 되돌어오려면 여러 해가 걸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제약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인플레이션을 합리적 기간 내에 목표로 되돌리는데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인플레이션 지속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데다 너무 일찍 통화정책을 완화할 경우 그 비용이 상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금 상승이 경제 회복을 돕고 있지만 자칫 추가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유럽의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상방 리스크를 주의하고 임금과 노동생산성의 추이를 면밀히 모니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파월, 연준에 전망 유연성 주문…쿡 연준이사, 지정학적 긴장 우려
제롬 파월 연준의장은 중앙은행이 경제를 예측하는데 있어 전통적인 복잡한 수학적 시뮬레이션을 뛰어넘어 사고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준 이사회 조사·통계 부서의 100주년 기념 컨퍼런스 개회사에서 “지적인 힘은 유연성 및 민첩성과 결합되어야 한다”며, “아무리 최첨단 분석 모델을 사용하거나 상대적으로 조용한 시절이라 해도 경제는 종종 우리를 놀라게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경제는 유연하고 다이내믹하며, 글로벌 금융위기나 팬데믹과 같은 예상치 못한 충격에 종종 영향을 받는다. 그런 경우 전망가들은 분석모델 틀에서 벗어나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체적인 통화정책 전망이나 경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리사 쿡 연준이사는 러시아와 중동, 중국 등이 관련된 지정학적 긴장이 인플레이션 상승과 같은 글로벌 시장에 광범위한 부정적 파급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많은 경제에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부담을 주고 있다”며, 식량과 에너지 등 원자재 상품의 역내 교역이 지속적 차질을 겪고 있다고 현지시간 수요일 한 연설문에서 지적했다. “중동 분쟁은 글로벌 인도주의 및 이주 문제의 악화는 물론 에너지와 금융시장에 추가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면서, 특히 글로벌 금융 시스템이 위험 회피와 자산가격 하락, 관련 기업 및 투자자들의 손실 등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에 대해선 추가적 성장 둔화가 금융 압박을 더욱 악화시켜 다른 신흥국 경제에 전이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총재가 내년 6월 임기가 끝나 퇴임함에 따라 후임자 물색에 들어갔다.
캐나다, 금리 높지만 인상 열어둬
캐나다 중앙은행의 일부 정책위원들이 지난 회의에서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을 했지만, 일단 당분간 “인내심을 갖고” 금리를 동결한 뒤 추후에 추가 긴축을 다시 고민하자는데 합의한 것으로 현지시간 수요일 공개된 의사록에 나타났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지난 10월 25일 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로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예상보다 느린 물가 안정 회복세와 단기 인플레이션 위험을 고려해 향후 금리를 다시 올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매파적 기조를 강조했다. 의사록에 따르면 6명으로 구성된 정책위원회는 통화정책 작동이 더욱 효력을 발휘함에 따라 경제의 수요와 공급이 다시 균형을 찾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플레이션을 2% 목표로 되돌리기 위해 금리를 충분히 올렸다는 판단과 더불어 확실한 물가 진정을 확인할 때까지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위원들은 근원 인플레이션이 하락 모멘텀을 보여야만 통화정책이 물가 안정 회복에 충분히 제약적임을 확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의사록은 전했다. 캐나다의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년간 3.5% 위에 멈물고 있다. Carolyn Rogers 부총재는 지난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추가 금리 인상 조건으로 경제성장률 서프라이즈나 예상보다 끈질긴 근원 인플레이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