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경 기자
SVB 진화노력…은행주 급락
조 바이든 대통령이 현지시간 월요일 오전 뉴욕증시가 열리기 전에 대국민 연설을 통해 미국 금융 시스템이 튼튼하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미국 은행주는 급락을 이어갔다. “미국인들은 은행 시스템이 안전하다고 믿어도 좋다. 여러분의 예금은 필요할 때 은행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SVB와 시그니처 은행에 대해 바이든은 경영진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두 은행에 돈을 예치한 모든 고객들은 “보호받을 수 있고 오늘부터 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 은행에 투자한 사람들은 위험을 알고도 투자했기 때문에 보호 대상이 아니라며 그것이 자본주의 작동 원리라고 지적했다. 또한 의회와 규제당국에게 이같은 종류의 은행 실패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은행 규제를 강화할 것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연준은 마이클 바 금융 감독 연준부의장 주도로 SVB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내부적으로 조사해 그 결과를 5월 1일까지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파월 연준의장은 SVB 사태에 대해 연준의 “철저하고 투명하고 신속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성명서에서 말했다.
미국 당국의 적극적인 위기 차단 노력에도 불구하고 은행주는 월요일 매도세를 이어갔다. KBW 은행지수는 장중 13.7% 빠지며 2020년 3월래 최대폭 하락했다. 웨스턴 얼라이언스 뱅코프와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은 한때 각각 85%, 79% 폭락했다. 온라인 증권사 찰스슈왑은 SVB 사태에 따른 변동성을 감당할 유동성이 충분하다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 애썼지만 장중 한때 23% 하락했다. 한편 골드만삭스가 SVB로부터 파산 전에 유동성 제공을 위해 평가손실이 누적된 증권을 매입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지역은행들의 주요 자금줄인 연방주택대출은행(FHLB)은 단기채 발행을 통해 당초 목표를 상회한 887억 달러를 모집했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헤지펀드계 거물인 빌 애크먼은 정부가 “제대로 한다면” 지역은행들 주식이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헐값”이라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연준 긴축 종료 베팅
스왑시장은 이제 이번 연준 긴축주기에서 추가 25bp 인상 가능성을 절반 이하로 보고 있다. 연준 최종금리 전망치는 5월 약 4.83%으로 바뀌었다. 지난 목요일엔 7월 5.5%, 금요일엔 6월 5.30%로 최종금리 전망치를 가격에 반영했었다. 또한 5월 고점에서 연말까지 약 80bp 인하를 내다봤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화요일 나올 미국 인플레이션 지표가 시장 예상보다 높게 나올 경우 전망이 또 바뀔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골드만삭스가 3월 FOMC 전망을 25bp 인상에서 동결로 수정했고, 바클레이즈 역시 “요동치는 금융시장과 위험회피 극심화 조짐”에 다음주 50bp 인상은 물건너갔다며 동결을 점쳤다. NatWest Markets도 연준 입장에서 물가나 고용보다 당장 금융안정 리스크가 급선무라며 3월 50bp 인상 전망을 버리고 동결로 돌아섰다.
TD증권의 Priya Misra는 “연준이 금융여건 긴축을 원했지만 이렇게 무질서한 방식은 아니었다. 따라서 일부 금리 인상 기대를 되돌리는 건 당연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금리 인하를 상상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노무라는 연준이 다음주 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bp 인하하고 양적긴축도 중단할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시장 반응을 볼 때 당국의 SVB 대응책이 불충분하다는 분위기라며, 연준이 새로운 대출 기구를 만들어 적격 담보 자산 범위를 확대하거나 긴급대출기구를 통해 보다 광범위한 지원을 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CB 빅스텝 인상도 불투명
SVB 붕괴에 따른 금융 불안 확산 조짐에 유럽중앙은행이(ECB) 지난달 예고했던 추가 50bp ‘빅스텝’ 인상 계획마저 불투명해지는 모습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주 정책회의에서 ECB내 비둘기파 위원들이 경제 환경이 바뀌었다며 좀더 신중한 접근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예상을 상회한 근원 인플레이션에 놀라 형성되어 온 매파적 기류와 충돌이 예상된다.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졌던 이번주 ECB 50bp 인상에 대해 투자자들은 그 가능성을 50% 정도로 낮췄지만, ECB 소식통들은 현 시점에서 대다수의 정책위원들이 50bp 인상 계획을 접기로 마음을 바꿀만한 이유가 크지 않아 보여 결국 향후 금리 인상 신호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내다봤다.
스탠다드은행의 Steven Barrow는 “ECB가 이번주 ‘약속’했던 50bp 인상을 철회해야만 할 수도 있다”며, 그럴 경우 중앙은행이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해 선제적 가이던스를 제시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ECB는 이미 작년 7월부터 기준금리를 한번에 50bp나 75bp씩 움직이며 총 300bp 인상을 단행했다. 트레이더들은 ECB 단기수신금리의 최종 수준 전망치를 3.40%으로 일주일 전보다 80bp나 낮췄다.
‘주식 반등시 팔아라’
월가의 대표적 약세론자인 모간스탠리 스트래티지스트 마이클 윌슨은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후 규제당국의 구제책 덕분에 미국 주식이 반등할 경우 매도하라고 투자자들에게 조언했다. “SVB 등 여러 금융기관들이 당면한 유동성 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할 경우 최소한 새로운 약세장 저점이 형성될 때까지 주가 반등시 팔라”고 현지시간 월요일 투자자노트에서 권고했다. 작년 주식 매도세와 10월 반등을 정확히 예견했던 윌슨은 SVB와 시그니처은행 폐쇄가 연준의 통화 긴축 영향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미국 당국이 문제 은행의 예금 보호를 약속했다는 점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광범위한 시스템적 이슈로 번지진 않겠지만, 이들 은행의 몰락은 경제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금자들이 전통적인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수익률이 높은 증권으로 옮겨가는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막기 위해 은행은 수신 금리를 올려야 하고 그 결과 은행 이익이 줄어들고 대출 공급도 감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가 “무작위의 개별적 충격이라기 보다는 기업실적 성장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전망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라며, “연준 정책이 물어뜯기(bite) 시작했다. 금리 인상이나 양적긴축을 멈추지 않는 한 이같은 현상이 역전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한편 미국 국책 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가 시장 불안에 5억 달러가 넘는 주택저당증권(MBS)에 기반한 신용위험공유(CRT) 채권 발행을 연기했다.
미국 경제 충격은?
SVB 파산에 연준을 비롯한 금융당국이 예금자 보호와 유동성 지원 등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어 당장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인 듯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들은 몇몇 지역은행의 실패가 전체 금융권의 상황을 대변하진 않는다며, 은행들이 대부분 튼튼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이 리스크에 자칫 은행들이 대출 기준을 엄격하게 강화하거나 소비자들이 경계심을 높일 경우 경기침체 공포가 증폭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웰스파고 선임 이코노미스트 Michael Pugliese는 은행 두 곳이 무너졌지만 전이가 억제된 상황에서 대규모 경제 충격을 예상하진 않는다며, 다만 파장이 심각해질 경우 신용 여건과 금융 여건이 매우 타이트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이미 노동시장에 균열이 나타나고 소비 지출이 곧 꺾일 수 있어 SVB 사태에 따른 영향보다는 연준의 긴축이 효과를 보이기 시작해 앞으로 지표가 이를 반영할 것으로 내다봤다. EY-Parthenon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Gregory Daco는 기업과 소비자의 신뢰가 SVB 여파로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며 이를 과소평가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침체에 들어서야만 알 수 있다. 멀쩡하다가 갑자기 바로 다음날 모두가 발을 빼기 시작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 경우 고용과 투자가 줄어드는 등 이미 약한 부분이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이치은행의 George Saravelos는 “우리는 현재 연준 금리 인상보다는 인하를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일드커브는 가파른 불 스티프닝을 보이고 있고 원자재 상품과 주식은 하락하고 있다. 이같은 양상은 모두 임박한 미국 경기침체에 부합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