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경 기자

ECB 매파 서프라이즈
유럽중앙은행(ECB)이 예상과 달리 양적완화 정책의 출구전략을 가속화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이미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더욱 뜨거워질 수 있어 성장 둔화 우려보다는 물가 안정이 보다 시급하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유럽에 있어 “분수령”의 순간이라며, ECB는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5월 300억 유로로 조정한 뒤 6월엔 200억 유로로 줄여 이르면 올 3분기에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코노미스트들은 ECB가 주요 정책 결정을 미루고 전쟁에 따른 영향을 좀더 지켜볼 것으로 예상했었다. ECB 정책위원회는 기준금리가 현재보다 낮아질 가능성을 더이상 시사하지 않았지만 향후 금리 인상을 “점진적”으로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금리 인상 시기에 대해 순 채권매입이 끝나고 난 뒤 “곧(shortly)”이란 기존 문구를 “어느 정도 후에(some time after)”로 바꾸었다.
라가르드 ECB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중기적으로 2% 목표에 안정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게 정책위원회의 판단”이라며,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특히 에너지 가격에 상당한 상방 리스크”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국채 10년물 금리는 1.89%로 22bp 가량 급등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이번 ECB 회의가 대체로 매파적이라고 평가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열린 첫 정책회의에서 테이퍼링 속도를 앞당겼지만, 동시에 채권 매입 종료와 첫 금리 인상 간의 고리를 느슨하게 풀면서 상당한 유연성을 확보했다고 진단했다.
美 인플레이션 40년래 최고치
미국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비 7.9%로 40년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장 예상에 부합한 수치로 1월 7.5%에서 더욱 악화된 모습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유가 급등세가 아직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은 상태라 앞으로 몇달간 더 가파른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 헤드라인 CPI 상승률은 전월비 0.8%로 가솔린과 식료품, 주택 가격 오름세가 영향을 미쳤다. 근원 CPI 상승률은 전년비 6.4%, 전월비 0.5%를 기록했다. ING는 인플레이션이 조만간 9%에 접근할 수 있다며, 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및 임금 상승분을 소비자에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불확실성을 의미하지만 미국 경제 모멘텀이 워낙 강해 연준이 올해 25bp씩 6차례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바클레이즈의 Michael Gapen은 인플레이션이 앞으로 몇달 동안은 내려가기 어려워 보인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얼마나 오래갈지 또한 대러시아 제재조치가 얼마나 파괴적일지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연준이 초반에 점진적 대응을 선택할 경우 결국 나중에 훨씬 공격적으로 움직여야만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옐런 미 재무장관은 올해 인플레이션이 전년비 “매우 불편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머물겠지만 경기침체는 예상하지 않는다고 CNBC 인터뷰에서 현지시간 목요일 말했다.
러시아 디폴트 위협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6430억 달러 상당의 외환보유고에 대한 자산 동결이 해제된다는 조건 하에 외국인 채권단에게 돈을 갚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달러와 유로 표시 채권을 루블화로 상환하기로 한 결정을 재확인하며, 러시아 중앙은행이 해외에 보유한 자산에 대한 제재조치가 사라져야 채권 투자자들에게 경화로 상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주 동안 서방 국가가 러시아에 대해 사실상 금융·경제 전쟁을 시작했다”며, “서방은 러시아에게 진 빚을 갚지 않고 우리의 금과 외화자산을 동결했으며, 모든 가능한 수단으로 우리의 해외 교역과 수출을 가로 막아 글로벌 무역에 해를 입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디폴트가 “현실성 없는(improbable) 이벤트”는 더이상 아니라고 경고했다.
3월 16일 쿠폰이자 지급 시기가 다가오면서 투자자들은 러시아 정부가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을 제때 상환할 의사가 있는지 초조해 하는 모습이다. 쿠폰이자 지급은 30일의 유예 기간이 있다. ICE Data Services에 따르면 스왑시장은 1년내 디폴트 발생 확률을 71%로 보고 있으며 5년내는 81%로 반영 중이다. Russian Railways JSC의 채권 투자자들은 수요일 예상했던 유로 표시 채권에 대한 쿠폰이자를 아직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핌코는 수십억 달러의 러시아 채권 익스포저를 보유해 디폴트시 펀드 손실이 예상된다. MSCI는 회사채 지수에서 러시아를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엑소더스
골드만삭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해 월가 대형 은행 중 처음으로 러시아에서의 사업을 폐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회사채는 계속 거래한다. 2021년말 기준 골드만의 러시아 크레딧 익스포저는 6억5000만 달러 정도로 크지 않으며 대부분 민간 분야에 몰려있다. 골드만은 이미 직원의 일부를 모스크바에서 두바이로 재배치 중이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간 체이스 역시 러시아에서의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정리하고 있으며, 현재 제한적 업무만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씨티그룹 역시 러시아내 영업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많은 외국계 기업들이 러시아를 탈출하자 이들이 버리고 간 사업체를 몰수하고 심지어 국영화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러시아 경제부는 외국인 소유지분이 25%가 넘는 기업이 러시아를 떠날 경우 적극 개입에 나서 법원이 이사회의 외부 경영자 영입 요청을 검토하고 해당 기업의 재산과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주식을 동결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외부 경영진에 국영개발은행인 VEB.RF가 포함될 수 있다.
위안화-루블 거래
중국은 유동성 경색 신호에 3월 11일부터 루블화에 대한 위안화의 트레이딩 제한 범위를 5%에서 10%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점점 더 단절됨에 따라 금융기관들이 루블화 변동성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위안화는 지난주 루블화 대비 신고점을 경신했고 일부 중국계 은행들은 해당 통화쌍의 거래를 중단했다. 미즈호은행의 Ken Cheung은 “변동성이 심한 루블화 거래에 대응한 정책 조치로, 시장조성자가 가격을 결정하고 트레이딩 유동성을 개선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다”고 설명했다. 극심한 변동성에 거래가 위축되면서 매수-매도 호가 스프레드는 수요일 사상 최대인 197pip까지 벌어졌으나 중국 당국의 발표에 106pip으로 좁혀졌다. 중국은 전략적 파트너인 러시아와 정상적인 무역 거래를 지속하겠다고 약속했다. 블룸버그가 IMF 자료를 토대로 계산한 결과 양국간 무역 규모는 2020년 112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