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간 세일즈에서 물리치료사로...40대의 도전

(블룸버그) — 홍콩과 서울을 오가며 총 13년을 JP모간체이스은행에서 일한 뱅커가 물리치료사로 일하기 위해 올해 초 뉴질랜드 대학에 입학, 한 학기를 무사히 마쳤다.
JP모간 서울지점에서 뱅킹 세일즈 부문 고참이었던 임경우 현 오타고대학 건강학부 신입생은 “결국 하고싶은 일을 시작했다”며 운동 매니아인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 현실에서 대안을 찾고 준비하는데 7년 이상을 투자했다고 이번주 블룸버그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말했다.
지난해 글로벌 12대 은행이 FX 부문 프론트 오피스 인력을 5% 축소하는 등 전세계에서 은행들이 세일즈와 트레이딩 부문 인력을 감축했고, 올해 들어서도 골드만삭스와 노무라, 모간스탠리 등의 감원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용기있는 13년 경력 뱅킹 세일즈 맨의 변신은 솔깃하다.
그의 결정은 자신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큰 일이다. 작년 우리 나이로 마흔둘에 생긴 첫 아이의 교육과 부부의 노후 등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가운데 “바보온달을 공부시키는 평강공주가 되겠다”는 아내의 통큰 결정과 지원 덕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가족들을 한국에 두고 유학 중인 그는 자신과 같은 결정을 하려는 주위 사람들이 있다면 “진정 원해서 선택한 것이라면 권하겠다”면서도 다만 “나이가 절반도 안되는 현지 학생들과 공부 경쟁을 하려면 결코 쉽지 않은 길을 외롭게 가겠다는 각오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털어놨다.

하고 싶은 일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들어서, 또는 지금 직장이 불안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내 결론은 물리치료였다”고 그는 말했다.
처음 시작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기반으로 직업을 찾아 지속할 수 있을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2010년 프로 골퍼 자격증을 딸 만큼 골프에 열심이고, 유학가기 직전까지 금요일마다 농구동호회에서 맏형 노릇을 하며 운동을 하던 그는 주말이면 기능해부학과 재활치료 사설학원을 돌아다니며 고민했고 구체적으로는 뉴질랜드를 사전답사해 보며 어느 나라에서 어떤 방식으로 공부할지를 결정하고 준비하는데 7년 이상을 투자했다.
가진 것을 내려놓지 않고 이민을 생각하다보면, MBA나 대학원 등 현재 일과 관련된 공부를 더 하거나, 관련 분야 회사에 취업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현실도피를 위해 요리사나 아는 한국사람 사업체에 들어가는 등 영주권을 빨리 딸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도 하다. 그런 유혹에 넘어간다면 “결국 한국에서 느끼는 불만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면서 자신은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았고, 그 결과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길을 가게 됐다고 말한다.

계산

“여전히 나는 뱅커다”라면서 그는 앞으로의 현금흐름과 다양한 리스크를 따져봤을 때 “유학이 생활 면에서도 괜찮은 계획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자신의 자금 흐름 명세서를 내보였다.
1억 원 정도 소요되는 4년간의 학비를 포함한 2억 원 가까이 들어갈 유학비용, 그리고 학생이 되면서 지불하는 기회비용, 국내에서 자녀 2명을 키울 때 들어갈 교육비, 뉴질랜드 학교교육 수준, 자신이 외국계 금융사 직원으로 일할 때와 뉴질랜드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할 때 예상되는 근무가능 기간 등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따져보면 자녀교육의 질이나 가족의 건강을 위해 “최선의 결정이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기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아깝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어떤 회사를 다니건 직장인이라면 대부분 실적 압박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을 것”이라며 회사에서 정리해고 되거나 정년퇴직하거나, 혹은 자진 사퇴하는 등 세가지 경우 중 하나로 “내가 준비한 계획에 맞춰 떠나는 것도 불확실성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또 뉴질랜드 물리치료사로서 직업 전망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는 “일단 의료인 수요 대비 공급이 모자라 일자리 구하는데 문제가 없고, 사회적 평판이나 일자리의 질도 괜찮다”면서 통계자료를 살펴본 결과 70세까지 근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또 한국과는 달리 자신의 클리닉을 열어 사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현지 생활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한국에서 아내가 혼자 키우게 하는 것과 더불어 “가장이 4년간 돈을 벌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그는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평강공주 역할을 맡은 아내의 결단과 도움이 없었다면 선택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첫 손가락에 꼽았다.
현재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가능한 빨리 뉴질랜드로 불러들이고 싶지만, 그의 학업과 아내의 커리어 등에 따라 내년에 바로 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현지에서 겪는 실질적 어려움으로는 물리치료사가 되기위한 생소한 공부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과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하다”고 털어놨다.
그가 공부하고 있는 헬스사이언스 학부는 한국의 의대와 보건대를 합친 학부로 한국으로 치면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이나 의예과 수준의 공부를 1학년때 한다고 한다. 2000명 정도인 학부 신입생의 절반 정도는 1학기에 F를 받고 탈락할 만큼 공부가 어렵고, 남은 절반 중에서도 500명 정도 만이 의대 및 치대, 물리치료 등 인기있는 과로 진학할 수 있다.
나이가 절반도 되지 않는 10대 현지 학생들과의 기숙사 생활도 적응하기 쉽지않았다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뉴질랜드 현지 대학에서 겪는 문화적 차이 뿐아니라 세대차에 따른 문제들이 생각보다 컸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현지 학생들도 어려워서 중간에 많이 탈락하는 전문 의료인 과정을 나이먹은 외국인이 끝까지 해내는 것은 정말로 쉽지않을 것이다”며 ‘한국에서 살기 싫다’거나 ‘좋아보인다’는 정도로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권하고 싶지 않은 길이라고 강조했다.
뉴질랜드는 자신에게 미지의 나라지만 새로운 곳에서 “의료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가치있고 흥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며 본인이 신중하게 고민한 후에도 하고싶은 일이라면 당장 도전할 것을 권했다.

최환웅 기자 (송고: 07/28/2016)
참고: 블룸버그 기사 링크 {NSN OB01XI6KLVRF }